코미디 헤이븐에 남긴 마지막 농담 | 박철현 (9분)

강연 좋아하시나요? 전 좋아해요 저도 모르게 스탠드업 코미디 하다가 한번씩 강연으로 넘어 가거든요 갑자기 교훈 주고 끝내 버릴지도 몰라요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인생의 용기를 얻기 싫으면 게임 좋아하시나요? 오늘 계속 좋아하는지 물어볼 거예요 게임 좋아하시나요 저도 좋아하는데요 요즘 게임 하기가 싫어요 왜냐면 사람들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하거든 요 채팅을 되게 함부로 해요 제가 어렸을 때 게임을 할 때만 해도 안 그랬던 것 같거든요 뭐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카트라이더 그런 걸 할 때는 사람들이 막 게임을 하다가 화가 나면 이렇게 화를 냈어요 융 버럭 융 융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화를 냈어요 막 같은 팀이 날 물풍선에 가두고 안 구해줘 머리 끝까지 화가 올라가서 융 버럭 그러던 때가 있었다는 거죠 시대가 많이 흘렀어요 요즘에는 팀으로 하는 되게 많은 게임들이 있죠 뭐 롤 오버워치 이런 게임들이 있어요 그런 게임을 하다가 같은 팀이 조금 이라도 못하면 요즘 애들은 이렇게 물어봐요 야 너 엄마 없냐? 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좀 이상하지 않아요? 게임 못하는 사람한테 엄마 없냐 물어보는 거는요 우리가 집에서 항상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보면 엄마는 게임을 보통 못하게 하세요 그니까 집에 엄마가 없으면 게임을 더 잘하게 될 거란 말이죠 게임 못하는 사람한테 물어볼 말로 적당한 건 엄마 없냐 가 아니라 엄마 있냐? 너 혹시 옆에 엄마 있어? 와 나 임마, 엄마 있네? 가 돼야 되지 않겠어요? 엄마 있으니까 게임을 못하는 거지 정 물어보고 싶으면 정 욕을 하고 싶으면 이렇게는 물어볼 수 있겠죠 엄마 많니? 실제로 엄마 한 여덟 분이 내 게임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게임 잘하기 힘들어요 그런 이유에선가 중동 국가에선 e스포츠 선수가 안 나오더라구요 어 앞에 앞에 중동 분(알파고)이 다녀 가셔 가지고 맨날 하던 농담인데 이건 뺐어야 했는데 습관적으로 해버렸네요 와우 형 미안해요 공부 좋아하시나요? 안 좋아하시겠죠 저도 싫어하는데 고등학생 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들만 가는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죠 공대였는데 혹시

카이스트라고 들어보셨어요? 거긴 못갔어요 거길 어떻게 가요 열심히 해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에요 전 뭐 그거 벤치마킹 해서 만든 울산에 있는 작은 대학교에 들어갔어요 뭐 다양한 장점이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멋있었던 점은 100% 영어강의를 하는 학교였다는 거예요 너무 멋있었죠 저도 그렇게 봤어요 '와우' 하고 들어가서 보고는 '에이' 하고 학을 뗐죠 일단 강의만 영어가 아니더라고요 시험도 발표도 과제도 다 영어로 했어요 제가 제일 짜증났던 부분은 조별 과제를 영어로 해야했다는 건데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조원들이랑 많이 싸워요 그때도 영어를 썼어야 했죠 Hey hey hey Where is our ppt? Ah here What is this Bonobono shit? Fuck you Get out of here Do you have many moms? 전 어쨌거나 여길 졸업하면 영어 만큼은 잘하게 되겠지 하고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전 졸업하는데 성공했죠 그 결과 대화하지 않고 일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어우 그렇게 영어 쓸 바에야 안 쓰고 말겠다 나는 니가 말하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 그런 초감각이 생겨났죠 이건 굉장히 유용했어요 졸업하기 전에 한 두 달 정도 회사에서 인턴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서도 전 두 달 동안 아무 말 안하고 일만 했거든요 음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 안 가져주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출근 날에 과장님이 저한테 오셔서 이렇게 말씀 하시더라구요 똑똑 철현씨 내가 철현씨한테 못한 말이 있는데 난 철현씨가 음 우리 부장이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저 새끼 또 찾는다 수고했어 하고 가시더라고요 저는 회사 생활 했어도 잘 했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갔을 때 제가 다녔던 대학교가 지어진 지 한 3년 정도밖에 안 됐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막 대학교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봤어요 근데 생각보다 대충 만들어지더라구요 그니까 뭐 유구한 역사가 있는 학교들은 뭐 슬로건이 있고 무슨 뭐 마스코트가 있고 뭐가 있고 다 있잖아요? 근데 우리 학교는 되게 그걸 급하게 만들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게 이제 마스코트를 만들던 과정인데 음 좀 특이했죠 학교 이름이 유니스트 였거든요 마스코트가 유니콘이 되더라구요 장난치는 건가

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마치 세종대학교 마스코트 를 세종대왕으로 할까요 뭐 카이스트 마스코트를 엑소 카이 가 하는 건 어떨까요 그런 느낌이잖아요 뭐 말장난 하는 건가 더 짜증 났던 건 이름마저 대충 지었다는 건데 이름이 그냥 윤이가 되더라구요 유니스트 마스코트 유니콘 이름이 윤이가 됐어요 차라리 학생투표를 가장 많이 받았던 이름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죠 그 이름은 유 니코니코니였거든요 엣지 있잖아요 뭐 우린 창피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인기가 많았을 수도 있겠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는 대학교였죠 영화 좋아하시나요? 근데 기생충도 다 안보고

전 봤어요 송강호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황금종려상을 받아요 이 영화의 반전이죠 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한참 지나고 보니까 제 삶은 영화 같기 보다는 독립영화 같더라구요 일단은 예산이 계속 부족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멋있기보다는 뭔가 불편하고 사연 있어 보였죠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나오지도 않았어요 제일 짜증났던 부분이죠 그리고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 고 사실 참 슬펐던 건 제가 대학교 다니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를 받아줄 상영관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죠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이런 멋진 상영관에서 여러분들 같은 훌륭한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어요 너무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맞아요 방금 그 말로 인해서 저는 오늘도 강연을 해버렸어요 세바시 나가고 싶네요 독립영화로 사는게 저는 뭐 남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가 쿠키 영상 되는 것보다는 훨씬 멋진 일이 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솔직히 돈의 맛을 보고 싶기도 해요 언젠가는 상업영화가 돼서 천만 관객을 받아들이고 싶죠 그래서 저는 항상 동료 코미디언 들한테 이렇게 얘기를 해요 난 언젠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이 될거야 라구요 근데 항상 코미디언들은 제 몸뚱아리를 가리키면서 일단 괴물은 된 것 같애

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본주의가 낳아 주기만 하면 돼요 굉장한 사실이죠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어요 코미디헤이븐 좋아하시나요? 스탠드업코미디 좋아하시나요? 저도 좋아합니다 박철현이었어요